진로 역량에 대한 성찰

2022.06.03 2260명이 봤어요

 세화고등학교 문우일 선생님

 

 

1. ‘무엇이 되고 싶니?’

이런 노랫말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 빨간 옷을 입고 / 새콤달콤 향내 풍기는 / 멋쟁이 토마토 토마토 / 나는야 주스 될거야 꿀꺽~♪

나는야 케첩 될거야 찍 / 나는야 춤을 출거야 헤이 / 뽐내는 토마토 토마토~♬

 

유치원 즈음에 배우고 즐겨 부르는 ‘멋쟁이 토마토’ 라는 동요이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토마토라는 작은 오브제를 놓고 재밌고 즐거운 상상을 펼쳐 놓았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모습부터, 빨간 색깔에 새콤달콤한 맛까지 토마토가 갖고 있는 특성을 잘 살리면서도 토마토 주스와 토마토 케첩이라는 토마토 상품을 연결 시켜 완성한 노랫말이 꽤 그럴듯하다.

한데 이 노래를 한 참 따라 부르게 하고는 다음과 같이 묻는 건 국룰쯤 된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마 이때쯤 부터가 아닐까?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쉽지 않은 고민을 강제로(?) 하게 된다. 물론 자신의 장래에 대한 고민은 꼭 필요하다. 아니 어쩌면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이라면 물을 수밖에 없는 본능적인 질문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물음이 갖는 본질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위의 질문을 단순히 어떤 직업에 대한 고민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위의 질문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가?’ 보다는 깊이 있는 자기 반성을 바탕으로 ‘결과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질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온당하다.

그리고 여기서 ‘결과적’이란 궁극적 목적을 뜻하는 것이다. 궁극적 목적은 지나가는 과정일 수도 없고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단일 수도 없다. 전체 인생을 놓고 보면 대학에 가는 것은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은 보다 궁극적인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어야 한다.

 

 

2. 희망 진학이나 희망 직업은 진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직업을 곧 진로의 전부인 양 생각한다. 심지어는 진학을 진로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진로 역량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학문적 영역이 매우 협소하다거나, 직업에서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것에 국한된 것일 수밖에 없음은 물론 과정이나 수단일 수밖에 없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간주하면 스스로의 역량조차 그것에 한정 지어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 정도도 훌륭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진학이나 직업을 토대로 진로 역량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진학은 전공에 대한 이해력이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도를 보여주면 된다. 진로 역량이 학업 역량과 버무려진다면 꽤 그럴듯한 생기부가 될 수 있다. 직업을 진로로 간주한다면 조금은 더 체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희망 직업을 목표로 삼고 진학하려고 하는 전공을 수단으로 삼는 것처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위험 부담이 매우 크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특정 학과나 직업을 목표로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 학생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이 학생이 진로 역량의 중요성을 너무 잘 새기고 있다면 이 학생은 자신의 진로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 전체 교과에서 진행하는 수행평가는 물론 동아리도 그에 어울리는 것을 선택해서 활동했으며, 자율 활동이나 진로 활동 역시 온통 진로 역량에 맞춰 놓을 것이다. 진로 역량만 고려한다면 이 학생의 생기부는 매우 탁월한 평가를 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3학년 올라가면서 진로가 바뀐다면?

물론 자신을 속이고 3학년 때도 그냥 같은 ‘진로’를 가겠다고 꾸미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이런 경우도 있다. 진로가 바뀌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런데 또 같은 학교에서 자신보다 객관적 성적이 탁월한 학생이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 그 학과에 지원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대학교를 한 단계 낮추는 것이 그나마 더 바람직한 쪽에 속하겠지만 많은 경우 그런 경우를 택하기보다는 지원 전공을 바꿀 방법에 대해 전략 짜내기 작전에 돌입한다.

 

대학 입학을 삶의 궁극적 목적인 양 강요받으며 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경우가 별로 고민거리가 아닐 수도 있겠으나, 앞서서 든 예처럼 진로 역량을 조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간 공을 들인 사람이라면 참으로 답답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조금 극단적으로 제시한 예시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사실 학교 현장에서는 매우 자주,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진로 역량 강화라는 아주 훌륭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실제 운영이 엉뚱하게 진행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많은 학교에서 매우 자주, 그리고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3. 진로 역량을 제대로

 

그러면 도대체 진로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진로 탐색과 관련한 기본 시스템은 꽤 촘촘하게 갖춰져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진로 교사들에 의해 진로 성향 검사를 실시하기도 하고 이를 토대로 각자의 성향에 어울리는 다양한 직종이나 직군, 직업에 대해 안내를 받기도 하고, 워크넷이나 커리어넷과 같은 진로 탐색 관련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진로 성향을 개인적으로도 살펴볼 수 있다.

[ 워크넷 화면 갈무리 ]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각자가 진로에 대해 생각을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떻게?

우선 진로, 즉 자신이 추구하는 바, 결과적 목적을 객관적 지위보다는 도달 하고픈 인간의 모습으로 이해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진학이나 진로는 앞서도 반복적으로 언급했지만 과정이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과정이나 수단은 그러한 인간으로 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과정이나 수단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과정이나 수단을 먼저 고려한다거나, 혹은 그 자체를 목적이라고 착각하지는 말아야겠다.

더불어 진로는 명사형보다는 동사형에 가깝다. 공학도로써의 삶을 꿈꾸는 사람은 공학도라는 이름을 명함에 새기고 사는 것이 목적일 수는 없다. 공부도 잘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라면 명함에 공학도라는 이름을 새기는 것은 20대 후반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면 그는 이제 죽는 일만 남는 것이 아닐까? 공학도라면 공학도로서, 공학자만이 할 수 있는 것과 관련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쫓아야 한다. 적어도 공학도라면 ‘아이언맨을 만들 것이다.’라는 정도는 생각해야 진정한 진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커리어넷 화면 갈무리 ]

 

물론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겠지만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으므로 조금 더 현실적인 가치를 따져보자.

진로를 동사형으로 고려한다면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나 노력이 조금은 더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아이언맨 만들기’가 진로 희망인 학생은 디자인 쪽으로도 사회학 쪽으로도 학교활동을 채울 수 있겠다. 아이언맨이라는 기계는 공학자가 만드는 것이겠지만, 아이언맨의 미적 가치를 높이는 것은 디자인 계열의 학생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아이언맨이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하고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이 좋은지와 관련하여 그 구체적 모습과 역할 등을 고민하고 구상하는 것은 인간과 사회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렵다. 삶의 진짜 목적을 발견하거나 선정하는 것은 만만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결정해서 대충 그림만 그리기에는 그로 인해 감당 해야 할 무게가 엄청나게 무거운 것 또한 사실이다. 정말로 깊이 있게 생각해볼 일이다.

 

#교육일반